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 (문단 편집) === 1984년 OB와의 악연 === 1984년 삼성과 OB의 사이는 최악이었다. OB와 김영덕 감독의 악연은 1983년 10월 성적부진과 박철순의 부상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감독을 사퇴하면서 시작됐다. 김 감독은 사퇴 후 거취문제에 대해 "자신의 야구이론을 정리한 뒤 일본 유학"을 밝혔었다. 하지만 OB 감독을 사퇴한 11일 뒤에 삼성 감독으로 입단 계약을 마쳐 OB가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 때문에 삼성이 짜고 감독 빼돌리기를 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애초에 삼성에서는 [[김진영(1935)|김진영]] 감독과 계약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갑작스레 김영덕 감독이 OB를 나오면서 김영덕 감독 쪽으로 선회한 것.] OB 선수들도 김영덕 감독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기에 유독 1984년 전기리그에는 OB 선수들과 충돌이 잦았다. 4월 10일 OB와 첫 3연전 때 OB 선수들은 김영덕 감독을 보고도 본채 만채 했고 다음 날에도 OB 선수들은 김영덕 감독을 무시했다. 12일에야 OB 선수들이 김영덕 감독을 찾아와 인사했는데, 이번에는 김영덕 감독이 선수들의 인사를 무시했다. 그러자 OB 선수들은 그날 경기 내내 김영덕 감독을 험담하며 야유를 보냈다. OB의 감독이던 [[김성근]] 감독이 만류했지만 선수들은 도저히 듣지 않았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으니, 선수 중 유독 배원영이 큰 소리로 김영덕 감독에게 야유를 보냈는데 배원영은 신인이라 김영덕 감독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배원영은 김영덕 감독이 제일 싫어했던 별명인 '''[[변태]]'''도 외쳤다.]. 경기 후 김성근 감독의 권유로 OB 선수들은 김영덕 감독을 찾아가 사죄를 구했지만, 김영덕 감독은 배원영의 뺨을 때리며 "니들이 그러고도 프로냐!"하며 도리어 야단을 쳤다. 주위에서 말리는 바람에 다행히 큰일 없이 거기서 일이 끝났다. 김성근 감독의 자서전에서는 이때 상당히 불쾌했었다고 한다. 김영덕은 김성근에게 재일교포 출신 선배였고 실업야구시절부터 인연이 있었고 바로 전년도인 1983년에는 감독과 코치였지만, 이때 완전히 돌아서게 됐다고 한다. 5월 2일 대전 OB와의 경기에서는 빈볼 사태가 벌어졌다. 1회초 OB의 [[계형철]]이 삼성의 [[김근석]]의 몸을 맞췄고, 삼성에서 항의를 했으나 심판의 제지로 큰일 없이 넘어갔다. 삼성이 11대4로 크게 앞서있던 8회말에 이번에는 삼성의 [[김일융]]이 던진 공에 조종규가 맞자 OB 선수들이 마운드를 향해 달려왔다. 삼성 선수들 역시 달려나가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OB 선수들에게 얻어맞은 김근석은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이 때문에 몇몇 OB 선수들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불미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5월 12일 대구에서도 충돌이 있었다. 6회말 삼성의 공격 때 OB의 3루수 양세종이 포수 [[김경문]]의 견제 송구를 받아 3루 주자 [[천보성]]의 머리쪽으로 태그를 한 것. 삼성 선수들이 이에 흥분했으나 다행히 별 소동 없이 무마되었다. 그러나 [[대구아재|흥분한 관중]]이 내던진 빈 병이 OB 1루수 구천서의 머리에 강타해 구천서의 이마가 찢어졌다. 6월 2일 대전에서 또 충돌이 있었다. 2회말 내야수 실책으로 출루한 OB의 이홍범이 타자 [[조범현]]의 번트 타구에 병살을 막기 위해, 2루로 달려오던 삼성의 유격수 [[오대석]]의 허벅지를 걷어찬 것. 이홍범은 5경기 출전 정지로 끝났지만 오대석은 커리어 내내 허벅지 부상에 시달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